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4일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 R&D센터를 찾아 HBM웨이퍼와 패키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왼쪽부터 최태원 회장,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 최우진 SK하이닉스 P&T 담당. (사진=SK)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삼성전자 DS부문과 SK하이닉스의 2023년 4분기 실적 발표 이후 양사의 표정이 엇갈리고 있다. 영업이익 흑자전환에 성공한 SK하이닉스가 웃고 전기에 이어 적자를 이어간 삼성전자는 우는 모습이다. AI시대를 맞아 몸값이 높아진 HBM(고대역폭 메모리)에서 SK하이닉스가 앞서가면서다. HBM을 선점한 SK하이닉스는 CAPEX 최소화로 실적 관리에 들어갔고 삼성전자는 대규모 투자로 맞불을 놓고 있다.



SK하이닉스 1년만에 영업이익 흑자전환…삼성전자 DS부문 적자 지속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5일 2023년 4분기 및 연간 실적을 발표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 매출액 11조 3055억 원, 영업이익 3460억 원 등 실적을 거뒀다. 전기 대비 매출액은 25% 증가하고 영업이익은 흑자전환했다. 2022년 4분기 이후 이어온 영업적자를 1년 만에 벗어난 것이다.


SK하이닉스의 실적 호조는 지난해 4분기 전후로 늘어난 AI 서버와 모바일향 제품 수요 때문이다. 평균판매단가(ASP)가 상승 등 메모리 시장 환경이 개선도 영업이익 흑자전환의 주요 요인이다. 


특히 AI용 고부가가치 메모리인 HBM 부문을 SK하이닉스가 선점한 점이 수익률 개선의 가장 큰 배경이다. 지난해 SK하이닉스는 주력 제품 DDR5와 HBM3를 앞세워 D램 시장 점유율을 높였다. 전년 대비 DDR 매출은 4배, HBM3 매출은 5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도 SK하이닉스는 고성능 D램 수요 증가 흐름에 맞춰 HBM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한 전략을 이어갈 예정이다. 현재 SK하이닉스는 HBM3E 양산과 HBM4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서버와 모바일 시장에 DDR5, LPDDR5T 등 고성능, 고용량 제품을 적기에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반면 SK하이닉스에 HBM 시장 점유율이 뒤쳐진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에도 영업적자를 이어갔다. 지난달 31일 실적을 발표한 삼성전자는 2023년 4분기 DS부문에서 매출액 21조 6900억 원, 영업적자 2조 1800억 원을 기록했다. 영업적자 3조 7500억 원을 기록한 전기보다 영업적자 폭을 줄였지만, 흑자전환에는 실패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이 엇갈린 이유는 HBM 때문이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인 고성능 D램이다. 고사양이 요구되는 인공지능 반도체의 핵심부품으로, 기존 D램 대비 가격이 2~3배 비싸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 50%, 삼성전자 40%, 마이크론 10% 등으로 집계됐다. 


다만 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을 선점한 엔비디아에 HBM을 단독 공급하는 등 승기를 잡았다는 평가다. SK하이닉스는 4세대 HBM인 HBM3를 엔비디아에 독점 공급하며 SK하이닉스는 HBM3 기준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95%로 끌어올린 상황이다. 현재 SK하이닉스는 세계 최초로 개발한 5세대 HBM ‘HBM3E’의 성능 검증을 위해 엔비디아에 샘플을 공급했다. 내년 상반기면 SK하이닉스의 HBM3E가 양산에 들어갈 전망이다.



현금 늘리는 SK하이닉스, 투자 늘리는 삼성전자



올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투자 방향은 엇갈릴 전망이다. HBM 등 고부가가치 부문에서 승기를 잡은 SK하이닉스는 실적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CAPEX 관리에 들어간 모습이다. 지난해부터 SK하이닉스가 설비투자는 줄이면서 현금성자산을 늘리면서다. 


2023년 3분기 기준 SK하이닉스의 현금및현금성자산은 7조 1223억 원으로, 2022년 말 대비 43.1% 증가했다. 같은 기간 비유동자산 중 유형자산은 60조 2285억 원에서 54조 169억원으로 10.3% 줄었다.


이는 SK하이닉스가 시설투자의 신·증설 및 보완 등을 줄이고 유동성을 확보한다는 방증이다. 최근 SK하이닉스가 지난해 4분기 및 전체 실적을 발표하며 “투자비용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CAPEX 관리 기조는 올해도 유지될 전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0월 19일 차세대 반도체 R&D단지 건설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0월 19일 차세대 반도체 R&D단지 건설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반면 삼성전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HBM과 D램 선단공정 생산능력 확대 등을 위한 적극적인 시설투자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의 비유동자산 중 유형자산은 187조 3747억 원으로, 2022년 말 168조 454억 원보다 11.5%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삼성전자는 DS부문에 당초 연간계획 47조 5000억 원보다 9000억 원 늘어난 48조 4000억 원 규모의 시설투자를 집행하기도 했다.


다만 올해 삼성전자의 DS부문 전체 투자규모가 늘어날지는 불투명하다. HBM 등 고성능 D램 외 낸드플래시 범용 메모리 반도체 부문의 글로벌 업황 반등이 상대적으로 늦어지고 있어서다. 반도체 업계는 지난해 전체 실적에서 양사의 적자가 누적된 만큼,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선별적 투자를 집행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