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_1]

95세 강순주씨 1950년 국보법 위반 낙인

70여년 전 제주 4·3 당시 일반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생존수형인에 대한 첫 직권재심 청구가 이뤄졌다.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은 1950년 5월 22일 제주지법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금고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생존수형인 강순주(95)씨에 대한 직권재심을 27일 청구했다고 밝혔다.

 

강씨는 2011년 1월 26일 제주4·3희생자로 결정된 일반재판 수형인이다.

 

제주시 봉개동 제주4·3 평화공원에서 유족들이 참배하고 있다.

그동안 합동수행단은 군사재판뿐 아니라 일반재판 수형인에 대해서도 직권재심을 청구해 왔으나, 일반재판 생존 수형인에 대해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합수단은 강씨의 기록 등을 토대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재심을 청구했다.

 

앞서 합수단은 4·3 희생자로 결정되지 않은 군사재판 생존 수형인 2명에 대해 직권재심을 청구해 무죄를 이끌어낸 바 있다.

 

합수단은 이날 군사재판 수형인 30명에 대한 직권재심도 청구했다.

 

앞서 합수단은 지난 2022년 2월10일부터 현재까지 48차에 걸쳐 제주4·3 군사재판 수형인 1390명에 대한 직권재심을 청구했다. 이 중 1300명(45차)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일반재판 수형인에 대한 직권재심은 8차례에 걸쳐 총 70명을 청구했고 이 중 50명이 무죄 선고로 명예를 회복했다.

 

4·3생존희생자 강순주씨는 일본 나고야에서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징용을 당한 한국인들이 비행장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전쟁의 참상을 알게 됐다. 1945년 광복이 되자 고향인 표선면 가시리로 돌아왔다.

 

1948년 4·3 당시 산사람들에게 동조했다는 이유로 옛 제주농고에 수감됐다. 이웃에 살던 청년 3명이 고문에 못 이겨 그를 좌익활동 가담자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강씨는 온갖 취조와 고문을 당했지만, 조서에 끝까지 손도장을 찍지 않았다. 하지만 졸속으로 진행된 재판에서 금고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1950년 6·25전쟁이 터지자 섬 전역에서 예비검속이 자행됐다. 그는 불순분자라는 누명을 쓰고 성산포경찰서에 연행된 뒤 제주항에 있는 주정공장에 끌려갔다. 총살형으로 청년의 삶이 끝나려던 순간, 가까스로 풀려났다.

 

그는 “살아남게 된 이유를 나중에 알게 됐다. 문형순 서장이 군의 명령에 항명했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문 서장은 성산·구좌·표선지역에서 예비검속으로 구금된 221명을 총살하라는 군의 명령에 ‘부당(不當)하므로 불이행(不履行) 하겠다’며 지시에 따르지 않고 이들을 풀어줬다. 이 때문에 ‘한국판 쉰들러’라 불린다.

제주=임성준 기자 jun2580@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d_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