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산들/ 이즈미 세이이치 지음/ 김영수 옮김/소명출판

“최상의 기쁨은 험악한 산을 기어올라가는 순간에 있다. 길이 험하면 험할수록 가슴이 뛴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인생을 등산에 비유한다. 험한 산을 올라가 정상에 다다른 순간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듯 인생 역시 고난이 있고, 이를 극복했을 때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니체 외에도 여러 사람이 등산을 인생에 비유하는 격언을 수없이 남겼는데, 그만큼 산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리라.

일본인 인류학자 이즈미 세이이치(1915~1970)는 ‘머나먼 산들’을 통해 산이 자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담담히 고백한다. 특히 그는 조선의 산에 감흥을 받아 등산을 시작했고, 인류학자로서 자신의 커리어 역시 등산에서 생긴 사건 때문에 영향받아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저서에 따르면 그가 본격적으로 등산을 하기 시작한 것은 부친과 함께 경성에 이주하면서다. 저자가 당시 일본에서 조선으로 온 사람들이 가끔 걸렸던 폐침윤을 앓자 온 가족이 여름방학 기간에 공기가 좋은 금강산 장안사 인근 여관에서 지내기로 했다. 매년 금강산으로 휴가를 오면서 산에 대해 관심이 커졌고, 이후 본격적인 등산을 하게 됐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일본인인 그가 등산을 시작한 계기가 당시 그들이 무시했던 조선의 산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이 책은 저자가 산과 어떤 인연을 맺고 활동을 해왔는지 상세히 기록한다. 특히 그가 국내 최초의 대학산악회인 경성제대산악회를 창설한 후 등산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만큼 당시 개발되기 전의 조선의 산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예컨대 그가 처음으로 등산한 금강산은 예로부터 불교의 영산으로 알려져 주자학을 신봉하는 조선시대에도 심산유곡에 절이나 암자가 많았다. 특히 금강산의 산세와 풍광이 동양에 머무는 외국인에게 알려지면서 당시 등산객은 파란 눈의 외국인이 많았다는 것은 의외의 사실이다. 당시 백두산 등반은 지금만큼이나 어려웠다. 조선 독립을 도모하는 빨치산과 강도집단인 비적이 활동했었기 때문이다. 이에 백두산을 등반하려면 경비대가 훈련을 위해 산에 오를 때 동행을 허락 받아야 했다. 한라산은 제주도민도 겨울산행은 꺼려해 저자가 처음으로 적설기 한라산 등반을 시도했다. 저자는 이곳에서 마에카와라는 동료를 잃었고 그 책임으로 산악회를 떠나게 된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랄까. 동료를 찾는 과정에서 제주도민의 생활과 토속무속인에 대한 관심이 생겨 인류학에 눈을 떴고, 이후 인류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저자는 종전 이후 도쿄대에 인류학교실을 개설하는 등 전후 일본 인류학계를 이끌었다. 이와 함께 남미 일본계 이민사회를 연구하면서 안데스지역 탐사에 흥미를 갖게 된다. 특히 그의 전인미답의 성과 중 하나인 코토시지역 발굴작업은 등산에 대한 그의 특별한 취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신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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