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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팀은 완벽한 선수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실체’가 아니라 부족한 것이 많은 선수들이 서로를 연민하고 빈자리를 메우려 도우며 도달하는 어떤 ‘상태’가 아닌가 싶다.” ─ 곽한영 ‘배구, 사랑에 빠지는 순간’
지금은 연일 프로배구 기사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지만 흥국생명 윌로우(26·미국)는 ‘완벽한’은 물론 ‘좋은’이라는 형용사도 앞에 붙이기 힘든 선수였습니다.
그랬다면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 때 두 번이나 ‘물을 먹을’ 일은 없었을 테니까요.
같은 팀 레이나(25·일본)도 아시아쿼터 선수 드래프트 때 전체 최하위로 지명을 받은 선수입니다.
그런데 두 선수가 만나 팀을 이루면서 흥국생명은, ‘배구 여제’ 김연경(36·흥국생명)이 김연경치고는 부진을 겪는 상황에서도, 두 경기 연속 셧아웃(3-0) 승리로 5라운드를 시작했습니다.
![‘OH’는 아웃사이드 히터, ‘MB’는 미들 블로커, ‘S’는 세터, ‘OP’는 오퍼짓 스파이커](https://dimg.donga.com/wps/NEWS/IMAGE/2024/02/07/123441797.1.png)
지난달 25일자 ‘발리볼 비키니’(https://bit.ly/49qnA05)는 김연경과 외국인 선수가 모두 후위에 있을 때 흥국생명이 공격에 애를 먹는다는 내용을 다뤘습니다.
그러면서 “김연경과 대각에 서는 아웃사이드 히터가 받쳐 주지 못하면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고 썼습니다.
여기서 ‘김연경과 대각에 서는 아웃사이드 히터’가 바로 레이나입니다.
레이나는 옐레나(27·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함께 뛴 4라운드까지 공격 효율이 0.244밖에 되지 않던 선수였습니다.
그러다 5라운드 들어 윌로우와 호흡을 맞추면서 이 기록을 여자부 현재 1위인 0.507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https://dimg.donga.com/wps/NEWS/IMAGE/2024/02/07/123441798.1.png)
배구에서 선수 A와 선수 B가 ‘대각에 선다’는 건 A가 전위에 있을 때 B는 항상 후위에 있다는 뜻입니다.
거꾸로 선수 A가 후위에 있을 때도 선수 B는 항상 전위에 있습니다.
따라서 김연경이 후위에 있을 때는 레이나가 전위 왼쪽에서 공격을 책임져 줘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로테이션 상황 세 번 중 두 번은 윌로우도 항상 전위에 있습니다.
윌로우는 예전에 ‘라이트’라고 부르던 오퍼짓 스파이커니까 코트 오른쪽을 책임집니다.
![리베로 도수빈(왼쪽)과 함께 상대 서브를 받고 있는 김연경.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https://dimg.donga.com/wps/NEWS/IMAGE/2024/02/07/123441799.1.jpg)
이런 상황에서 레이나의 공격력이 떨어진다면 상대 팀 블로커는 코트 왼쪽을 비워도 됩니다.
김연경에게 서브를 넣는다면 중앙까지 비우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아웃사이드 히터가 후위에 있을 때는 코트 중앙에서 ‘파이프 공격’을 시도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김연경이 서브 리시브에 신경 쓰느라 코트 가운데 공간을 차지하면 세트(토스)는 오른쪽으로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흥국생명은 4라운드 때까지 미들 블로커가 주로 시도하는 속공을 선택한 비율(6.5%)이 여자부 7개 구단 가운데 가장 낮은 팀이기도 합니다.
![스파이크를 날리고 있는 흥국생명 레이나.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https://dimg.donga.com/wps/NEWS/IMAGE/2024/02/07/123441800.1.jpg)
상대 감독 성향 또는 경기 상황에 따라 반대 방향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오퍼짓 스파이커에게 블로커를 붙여도 어차피 점수를 내줄 테니 왼쪽을 봉쇄하자는 판단을 내릴 수도 있는 겁니다.
그리고 어떤 선수라도 블로커 숫자가 늘어나면 점수를 올리는 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레이나는 4라운드까지 상대 블로커가 없거나 한 명일 때(러닝 세트)는 공격 효율 0.368을 기록했지만 2명 이상일 때(스틸 세트)는 0.188에 그쳤습니다.
그래서 ‘양쪽 날개’가 균형을 이룰 때 상대 블로커를 헷갈리게 만들 수 있고 그래야 다시 팀 전체 공격 효율도 올라오게 됩니다.
![2일 장충 GS칼텍스-흥국생명 경기 장면. KBSN 중계화면 캡처](https://dimg.donga.com/wps/NEWS/IMAGE/2024/02/07/123441801.1.gif)
레이나가 윌로우의 덕을 보고 있는 건 바로 이 지점입니다.
레이나는 2일 장충 GS칼텍스전이 끝난 뒤 “블로커 한 명의 존재가 큰 영향을 끼친다. 윌로우가 있기에 상대 블로커가 그를 의식하고 그래서 공격이 수월해진 느낌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위에 있는 GIF를 보시면 GS칼텍스 블로킹 라인이 윌로우를 의식하다가 레이나에게 ‘원(1) 블로킹’ 상황을 내주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날 경기만 놓고 보면 레이나가 공격을 시도한 27번 중 11번(40.7%)이 러닝 세트 상황이었습니다.
4라운드 때까지 레이나가 러닝 세트 상황에서 공격을 시도한 비율은 29.0%였습니다.
![김연경(왼쪽)과 윌로우.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https://dimg.donga.com/wps/NEWS/IMAGE/2024/02/07/123441804.1.jpg)
이렇게 느끼는 건 윌로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윌로우 역시 “레이나와 김연경 덕분에 상대 블로커가 한 명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대각이 비어 공격하기가 쉬웠다”고 말했습니다.
레이나와 윌로우가 이렇게 상부상조하면서 흥국생명은 5라운드 들어 김연경이 후위에 있을 때도 팀 공격 효율 0.393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흥국생명은 4라운드 이전까지는 같은 상황에서 공격 효율 0.238에 그친 팀이었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선수들이 서로를 연민하고 빈자리를 메우려 도우며 어떤 ‘상태’에 도달한 겁니다.
![2일 장충 경기가 끝난 뒤 기념 촬영 중인 흥국생명 선수단.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https://dimg.donga.com/wps/NEWS/IMAGE/2024/02/07/123441805.1.jpg)
물론 ‘사물·현상이 놓여 있는 모양이나 형편’(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뜻하는 상태(狀態)는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GS칼텍스는 상대에게 러닝 세트를 허용하는 비율(32.2%)이 여자부 7개 팀 가운데 가장 높은 구단 = 블로킹에 약점이 있는 구단입니다.
반면 8일 맞대결 상대인 정관장은 상대 공격 시도를 블로킹 득점으로 연결한 비율(6.5%)이 가장 높은 팀입니다.
김연경, 레이나, 윌로우 삼각편대가 서로를 도와 정관장의 블로킹 벽도 뚫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될 때 흥국생명의 상태는 비로소 ‘보통 때의 모양이나 형편’을 뜻하는 상태(常態)가 될 수 있을 겁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