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진 감독
“여러 경험 한데 모여 제3의 것 만들어
시청자들, 자기의 일부 볼 수 있었을 것”

스티븐 연
“과거 나에게 ‘다 괜찮아 질 거다’ 말하고 파
송강호는 영웅 같은 존재… 비교 말도 안 돼”

“결과적으로 생각해보면 (난폭 운전자) 그 사람에게 너무 감사한 생각이 듭니다. 그 사람이 없었다면 ‘성난 사람들’도 없었고, 오늘 이렇게 대화할 일도 없었겠죠. 그렇게 생각해보면 인생이 정말 희한한 것 같습니다.” (이성진)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을 연출한 한국계 미국인 이성진 감독과 주연인 스티븐 연이 2일 한국 기자들과 화상 간담회를 갖고, 작품의 뒷얘기를 털어놨다.

‘성난 사람들’은 동양계의 남녀가 마트 주차장에서 시비가 붙은 후 차량 추격전을 벌이고, 점점 큰 싸움으로 번지는 이야기다. 미국 TV의 아카데미상이라고 불리는 올해 에미상 시상식에서 미니시리즈·TV영화(Limited Or Anthology Series Or Movie) 부문 작품상과 감독상, 작가상, 남녀 주연상 등 8관왕에 올랐다.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크리틱스초이스 시상식에서도 작품상과 남녀 주연상을 받는 등 상을 휩쓸며 지난해 최고의 작품으로 꼽혔다. 완성도에 더해 한국계 미국인이 연출하고, 한국계 배우가 대거 출연했으며 그들의 삶이 녹아 있는 작품으로 국내에서도 큰 주목을 받는다. 

 

이 대단한 드라마는 이 감독이 겪은 난폭 운전자와의 조우가 모티브가 됐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감독 한 사람의 자전적 얘기인 것은 아니다.

 

이 감독은 “제 개인적 경험뿐 아니라 작가진들의 경험, 또 (배우들과) 나눈 수많은 대화, 이 모든 것이 한데 모여서 거대한 ‘믹싱 팟’(교반 냄비)을 이뤘다고 볼 수 있다”며 “모두의 경험을 한데 모아 누구도 정확히 경험하지 않은 제3의 것으로 변화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경험을 녹여냄으로써 “캐릭터들 안에서 (시청자) 각자가 자기 자신의 일부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공감을 받고,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고 이 감독은 인기의 비결을 풀이했다.

 

스티븐 연은 드라마에서 불안한 이민자의 모습을 생생히 표현하며 호평받았다. 그는 “이렇게 각 나라가 세계적으로 깊이 어떤 유대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 굉장히 기분 좋다”면서 그간 ‘이방인’으로서 미국 배우로 성장하는 고생스런 과정을 상기하며 “과거의 저에게 돌아가서 얘기해 준다면 ‘그냥 좀 괜찮아, 마음 편히 먹어’라고 할 것 같다. ‘다 괜찮아 질 거야’ 라고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성진 감독(왼쪽)과 스티븐 연이 ‘성난 사람들’ 촬영 중 대화를 나누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이에 이 감독도 한국말로 과거의 자신에게 “네 저도 괜찮아질 거에요”라고 말할 것이라며 웃었다. 

 

그간의 성취와 관련, 젊은 나이에 송강호 배우 버금가는 성과를 냈다는 질문에 스티븐 연은 “이 감독과 공통의 영웅 같은 존재로 생각하는 배우로 송강호가 있다”면서 “질문의 의도는 너무 감사하지만, 말도 안 되는 비교라고 생각한다. 반박하도록 하겠다”고 겸손해했다. 이어 “제가 솔직히 뭐 하고 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면서 “기쁘게 생각하는 부분은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제가 전보다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조금은 더 잘 알게 된 것 같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 감독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작품에 대놓고 얘기한 것은 아니지만, 서사 안에 유기적으로 잘 녹아들어 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제가 사는 것도 그와 비슷하다”면서 “앞으로 내놓을 작품에도 담고 싶은 주제”라고 말했다.

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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