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할리우드 대작 ‘웡카’ ‘아가일’ 기대 한몸에
한국영화 ‘도그데이즈’ ‘소풍’ ‘데드맨’도 가세
‘시민덕희’ ‘외계+인 2부’도 놓치면 아쉬워
황금종려상 수상 ‘추락의 해부’도 주목

올해 설 연휴 극장가는 할리우드 대작 2편과 한국의 개성 있는 중소형작들이 맞붙는다. 화려한 영상과 재미를 추구하는 관객이라면 할리우드 영화를, 잔잔한 감동이나 색다른 이야기를 선호한다면 한국영화나 독립영화를 우선 고려해 봄 직하다.

‘웡카’(왼쪽), ‘아가일’

◆할리우드 대작 ‘웡카’와 ‘아가일’

설 연휴를 앞두고 개봉한 스케일이 큰 할리우드 영화는 ‘웡카’와 ‘아가일’이 있다.

7일 개봉한 ‘아가일’은 매슈 본 감독의 작품으로 그의 전작인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2015)의 느낌이 배어 있다. 영화는 스파이 소설 작가인 엘리(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가 쓴 사건이 현실이 되면서 스파이들의 표적이 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설 속 주인공으로 전설적인 스파이인 아가일(헨리 캐빌)을 찾는 이야기다.

매슈 본 감독 특유의 액션이 충분한 눈요깃거리를 제공하고, 거듭되는 반전이 재미를 더한다. 다만 몇몇 장면은 감독의 상상력 과잉의 산물이다. 유명 가수 겸 모델인 두아 리파와, 영화 포스터와 예고편에 주역으로 활약하는 감초 고양이 ‘알피’가 등장하는데, 매슈 본 감독에 따르면 “실제로는 딸이 키우는” 아내 클라우디아 시퍼의 반려 묘다.

앞서 지난달 31일 개봉한 폴 킹 감독의 ‘웡카’도 설 연휴 경쟁에 가세한다. 팀 버턴 감독이 2005년 영화화한 로알드 달 작가의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프리퀄’(앞선 이야기)로 ‘윌리 웡카’가 자신의 초콜릿 가게를 세우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초콜릿 판매를 독점하고 있는 악당들과 맞서는 이야기다. 풍부한 동화적 상상력과 빛과 그림자처럼 어두운 풍경 속에 담겨 있는 화려한 색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영화계의 신성인 티모시 샬라메가 웡카 역을 맡았으며, 휴 그랜트가 신스틸러인 난쟁이 요정, 움파룸파 역으로 출연했다. ‘올드 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 ‘신세계’ 등 굵직한 작품을 촬영한 정정훈 촬영감독이 촬영한 것으로도 화제를 모은다.

‘도그데이즈’(왼쪽), ‘소풍’

◆개성 있고 작은 한국영화 세 편

설 연휴를 앞두고 7일 개봉한 한국 상업 영화는 ‘도그데이즈’, ‘소풍’, ‘데드맨’이 있다.

세 영화 중 가장 많은 82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도그데이즈’는 제작비에 비해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미나리’(2021)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이 세계적인 건축가인 민서 역을, 유해진이 개를 싫어하는 까칠한 건물주인 민상 역을, 김서형이 세입자 수의사인 진영 역을 맡았다. 이 밖에도 김윤진, 정성화, 다니엘 헤니, 이현우, 탕준상 등이 출연한다. ‘영웅’, ‘그것만이 내 세상’ 등을 통해 오랜 시간 조감독으로 활동한 김덕민 감독의 데뷔작으로, 반려인구 1500만 시대의 단상을 옛 감성으로 담담히 담았다.

특히 귀여운 반려견의 똘똘한 행동이 볼거리인데, 티는 나지 않지만 힘든 촬영 작업의 결과물이다. 민서의 반려견 ‘완다’가 뛰는 장면에선 초록색 옷을 입은 훈련사가 함께 뛰었고, 많은 장면이 세트장에서 촬영된 뒤 CG로 합성됐다. 윤여정이 인터뷰에서 개와의 촬영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데드맨’

75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데드맨’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2006)의 공동 각본을 맡았던 하준원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빚더미로 궁지에 몰려 이름을 팔고 바지사장이 된 이만재(조진웅)가 정치판 최고의 컨설턴트로 꼽히는 심여사(김희애)와 엮이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스릴러다. 초반 긴장감 넘치는 영상이 눈길을 사로잡지만, 아쉽게도 후반부에는 힘이 빠진다. 하 감독이 5년간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각본을 썼다.

 

김용균 감독의 ‘소풍’은 원로배우로 주연을 맡은 나문희, 김영옥, 박근형의 열연이 돋보이는 제작비 12억원의 저예산 영화다. ‘절친’이자 사돈지간인 두 친구는 60년 만에 고향 남해에서 머물며 16살의 추억에 웃고, 노인의 삶이라는 현실에 눈물짓는다. 고령화 사회인 우리나라의 재산·부양 등을 둘러싼 가족 갈등, 존엄사 등 사회문제를 재미있으면서도 진지하게 다룬다. 연로한 부모님과 명절에 함께 보기엔 주제가 무거울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시민덕희’(왼쪽), ‘외계+인 2부’

◆놓치면 아쉬운 그외 수작들

한국 설 연휴 영화는 지난해 168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임순례 감독의 ‘교섭’과 137억원의 ‘유령’이 맞붙은 것과 달리 올해 개봉한 영화들은 모두 제작비가 100억원에 못 미친다. 설과 추석 연휴를 대목으로 보고 대작을 선보여 온 한국영화의 공식이 깨진 것이다. 여러 영화가 함께 개봉하며 관객 동원에 실패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분석과 함께, 올해 한국 영화계가 힘든 한 해를 보낼 것임을 암시하는 현상으로도 해석된다.

극장에 이들 영화만 있는 건 아니다. 지난달 개봉한 ‘시민덕희’와 ‘외계+인 2부’가 여전히 살아남아 극장가 흥행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이고, 시즌을 맞아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관객을 위한 ‘아기상어 극장판: 사이렌 스톤의 비밀’이 7일 개봉한다.

진지하고 깊이 있는 사색을 필요로 하는 영화를 원한다면 선택지는 좀 더 넓어진다.

‘추락의 해부‘

지난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빛나는 ‘추락의 해부‘와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은 돈이 아깝지 않은 수작이다. 두 작품 모두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과 진실에는 간극이 있음을 일깨워준다. ‘추락의 해부’는 사건을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전에 없었던 법정 드라마의 새로운 스타일을 개척한다. ‘괴물’은 깊은 의미만큼이나 흥미로운 이야기로 지난해 11월29일 개봉한 이래 누적 관객 50만을 돌파하며 독립영화 영역에서 롱런하는 중이다.

북한 주민 탈출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비욘드 유토피아’와 75세 이상의 국민에게 국가가 죽음을 권하는 초고령사회 문제를 다룬 ‘플랜 75’, 주목받는 한국 신진 감독의 산실인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출신의 서정원 감독이 각본·연출했으며, 가정폭력의 문제를 절제된 감정으로 담아낸 ‘검은 소년’도 주목할 만한 영화다.

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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