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운노조에서 체크카드를 활용한 신종 채용·승진 비리가 활개 친 것은 정직원 채용을 사실상 노조 간부들이 결정할 수 있어서다. ‘정직원, 승진만 되면 투자금의 몇 배는 뽑을 수 있다’고 꼬드기며 건당 수천~수억원을 챙긴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확인됐다. 사실상 ‘취업비리 복마전’과 다름없었다. 이런 취업비리는 지난해 전직 위원장 세력들 간의 내부 권력 다툼 과정에서 승진·취업 비리 고발전이 벌어지면서 불거졌다. 전직 위원장인 D씨가 다른 전직 위원장인 E씨 라인을 쳐내자 E씨와 일부 지부장이 검찰에 D씨 라인을 제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금 은닉문제에 ‘체크카드 방식’ 고안

12일 한국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은 7개 지부에서 수십억원의 채용·승진 대가가 오간 정황을 파악했다. 부산항운노조에 대한 대대적 수사가 벌어진 2019년 이후 새로 발생한 채용·승진 비리다.

검찰은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수십 명을 구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밝혀진 사건 중 가장 부패가 심한 5부두지부에선 간부 5명이 구속됐고, 20여 명이 수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부는 승진·채용 대가로 오간 돈이 12억원가량이고, 지부장 개인이 착복한 금액도 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등에 따르면 브로커로도 활동한 간부 A씨는 체크카드를 동원한 새로운 현금 전달 방식을 적극 활용했다. 내부 사정을 제보한 한 노조 간부는 “정식 채용엔 4000만~5000만원, 조장은 1억원, 반장은 1억원이 넘는다는 얘기가 파다하다”며 “수십 년간 혈연과 돈으로 엮인 취업·승진 카르텔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채용·승진 비리에 연루된 지부 간부들은 현금이 적발돼 상당수가 처벌받았다. 과거 수사에선 한 지부장의 내연녀 집에서 수억원의 현금 뭉치가 적발되기도 했다.

한 전직 반장에 따르면 취업·승진 브로커로도 활동한 A씨는 탈이 나는 현금 대신 청탁자 명의의 체크카드를 만들어 해당 지부 간부 등에게 전달했다. 청탁자가 ‘돈이 없다’고 하면 신협 내 조력자를 통해 대출도 알선했다. 이렇게 받은 체크카드는 지부 고위직들이 돌려가면서 골프를 치는 등 유흥비로도 사용했다.

한 대형 법무법인의 재무 전문 변호사는 “범죄수익을 타인 명의 체크카드로 사용하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뿐 아니라 자금세탁에 해당할 수 있어 죄질이 더 무거워진다”고 설명했다.

무늬만 공개 채용 개선 시급

항운노조는 2019년 대대적인 검찰 수사 이후 공개 채용 제도를 도입한다고 선언했다. 부산지방해양수산청 부산항만공사 항만물류협회 항만산업협회 부산항운노조 등 5개 단체가 공개채용 심사를 통해 항만 신규 인력을 선발하는 방식으로 항운노조의 인력공급권을 어느 정도 제어하기 위해 고안됐다.

이를 계기로 비정규직(신입 노조원)을 공급하는 부산항인력관리주식회사(PRS)가 2019년 12월 설립됐다. 그러나 PRS를 통한 간접 공급은 일부 비상용직(도급제) 지부에서만 적용됐을 뿐, 상용직 현장에선 유명무실했다는 게 항운노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PRS를 통해 6개월간 현장에서 비정규직(신입 조합원)으로 일한 사람만 정식 노조원으로 채용될 수 있어 여전히 각 지부장이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터미널 운영사인 대기업은 지부가 추천한 인사를 거부할 수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조합 간부는 “지부는 일반 노조원, 조장, 반장, 지부장 순으로 돼 있는데 반장, 지부장만 돼도 출근 도장만 찍은 뒤 일은 하지 않고, 바깥 활동을 하는 게 수십 년 관행”이라며 “사용자들의 묵인 속에서 간부들이 ‘무노동 유임금’ 권한을 수십 년간 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상용지부 반장급 인력 이상의 평균 연봉은 세후 1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운노조 홍보실 관계자는 “항운노조는 노동공급자의 법적 지위를 갖고 있긴 하지만, 독점적 권한을 지닌 것은 아니다”며 해양수산부 등과 항만 비리 원천 차단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지속해서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

정희원 기자/부산=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