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 스위프트와 그의 남자친구인 미국프로풋볼(NFL) 선수 트래비스 켈시가 11일(현지 시간) NFL 결승전 이후 입맞춤을 하고 있다[AP]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페미니즘 등 진보적 정치색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온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인기가 시진핑 정권 하의 보수적인 분위기에 억눌린 중국 여성들 사이에도 불고 있다.

10일 블룸버그 통신은 스위프트의 순회공연인 ‘에라스 투어'(The Eras Tour) 실황 영화가 중국 전역 약 7000개 스크린에서 상영돼 9500만위안(약 175억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며 “스위프트가 시진핑 국가주석의 보수적인 시대(Conservative Era)에 지친 여성들을 열광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N차 관람(한 영화에 열광해 여러번 관람하는 것)하는 이들도 있다. 숴타오(22) 씨는 블룸버그에 ‘에라스 투어’를 두 번 관람했다면서 “스위프트는 내게 나를 가로막는 것에 대해 아니라고 말할 용기와 힘을 줬다”고 밝혔다. 이 영화를 세 번 봤다는 양양저우(29) 씨는 스위프트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내가 그럴 자격이 있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 중국 관영 주간지도 지난달 이 영화의 인기를 짚으며, 중국 팬들이 춘제(春節·설) 연휴 기간에 해당 영화를 보러 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영화의 인기가 주목되는 것은 중국 정부가 민감하게 받아들일 만한 요소들이 영화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스위프트의 가수 생활을 시대(era)별로 나눠 스펙터클하게 조명하는데, 화면에 ‘1989’라는 숫자가 커다랗게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스위프트의 다섯번째 앨범 ‘1989’를 뜻하는 것이지만, 중국에서는 민주화 시위를 중국 당국이 유혈 진압한 ‘톈안먼 사태’가 일어난 해여서 관련 표현이 금기시된다. 공교롭게도 테일러 스위프트의 이니셜인 ‘T.S.’도 ‘톈안먼 광장(Tiananmen Square)’과 이니셜이 같아 영화가 검열을 통과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다.

블룸버그는 이같은 점을 지적하며 “그러나 그러한 논란은 현실화하지 않았고 이 미국 스타는 계속해서 중국에서 새로운 청중을 모으고 있다”고 썼다.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7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에라스 투어’ 공연에서 열창하고 있다. 스위프트는 이날 일본을 시작으로 호주, 싱가포르 등지에서 아시아 순회 공연을 한다. [연합]

블룸버그는 또 영화에서 여성들이 젠더 불평등을 비난하는 페미니스트 노랫말을 큰 소리로 따라 부르고, 10대들이 LGBTQ(성 소수자)의 자유를 축하하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도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시진핑 시대에 여성 인권이 뒷걸음질치고 있는 점 역시 이 영화의 인기와 관련해 시사하는 부분이 있다. 시 주석은 지난해 10월 중국 부녀연합에 “출산 증진정책에 바탕을 두고 결혼·출산과 관련해 새로운 문화를 적극적으로 육성하라”고 주문한 바 있는데, 여성을 ‘애 낳는 기계’로 보는 시각이 깔린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시 주석은 또 최고 권력기관인 당 중앙정치국에 최소 1명의 여성 위원을 둔다는 수십년간의 불문율도 깨고 2022년 20기 중앙정치국을 남성으로만 채웠다. 시 주석 치하에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도 힘을 쓰지 못했다.

블룸버그는 “해당 영화가 노래하는 가치들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갈수록 보수적으로 돼가는 여성에 대한 비전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며 “이는 점점 더 엄격해지는 사회적 통제와 공산당의 경직된 기대를 거부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드문 해방구를 제공한다”고 짚었다.

스위프트는 2018년부터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들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바 있다. 그의 영향력이 큰 만큼 이번에 치러지는 미국 대선에도 그가 누구를 지지할 지 이목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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