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소니 혐의로 조사받고 있는 트로트 가수 김호중 씨(33)가 매니저에게 ‘음주운전을 했다. 경찰에 대신 출석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는 경찰이 수 차례 출석을 요구하기 위해 연락했지만 17시간 만에야 모습을 드러냈고, 차량 블랙박스의 메모리카드도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 사건을 강제수사로 전환해 김 씨의 행적을 재구성하기로 했다.

● 사고 전 주점 방문… “모든 수단 동원해 조사”

15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이 김 씨 사건에서 주목하는 건 그의 매니저가 거짓 자수했을 당시 상황이다. 김 씨는 9일 오후 11시 40분경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왕복 2차로에서 중앙선을 넘어 멈춰 있던 택시를 들이받고 곧장 현장을 벗어났는데, 약 2시간 후 경찰서에 나타나 자수한 건 김 씨의 매니저였다.

경찰은 김 씨가 매니저에게 ‘음주운전을 했다’라며 ‘대신 경찰에 출석해달라’고 직접 요청한 녹취파일을 확보해 조사 중이다. 당시 김 씨의 매니저는 김 씨의 것과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차에 타고 내리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포착됐을 가능성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김 씨가 처벌을 피할 목적으로 매니저에게 대리 조사를 요청하고 옷을 바꿔 입는 데도 관여했다면 범인도피 교사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경찰은 매니저를 조사한 후 김 씨에게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여러 차례 직접 조사받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김 씨는 사고 발생 약 17시간 만인 10일 오후 4시 반경에야 경찰서에 찾아갔다. 경찰이 차량 블랙박스의 메모리카드를 요구하자 김 씨는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 매니저에게 ‘대신 출석해달라’ 이후 “블랙박스 없다” 주장

김 씨 측은 사건이 알려진 뒤 “음주운전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10일 경찰이 음주 측정기로 김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했을 때도 면허정지(0.03% 이상)에 해당하는 수치가 나오진 않았다. 하지만 통상 음주 이후 8~12시간이 지나면 날숨을 통한 음주 측정으로는 사고 당시 음주 여부를 정확히 밝혀낼 수 없다.

경찰은 김 씨가 매니저에게 ‘음주운전했다’는 취지로 전화했던 점 등을 고려해 추가 수사 중이다. 이런 경우 측정 대상의 키와 몸무게, 적발 당시 혈중알코올농도 등을 근거로 사고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를 산출할 수도 있다. 모발이나 소변에서 검출되는 음주 대사체 검사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는데, 이 경우에도 최대 72시간 안에 측정해야 한다. 경찰은 “음주운전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최대한 근거를 수집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14일 김 씨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는 등 강제수사에 나섰다. 김 씨가 매니저의 거짓 자수에 관여했는지, 사고 당시 음주한 상태였는지 등을 밝혀내기 위해서다. 통상 시일이 경과한 뺑소니 사고를 수사할 땐 피의자의 차량 내비게이션 기록이나 들렀던 장소의 CCTV, 신용카드 사용 명세, 목격자 조사 등으로 운전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를 추정할 수 있다.

김 씨는 사고 이후에도 예정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11일과 12일 경기 고양시에서 ‘트바로티 클래식 아레나 투어 2024’ 공연을 했다. 김 씨 소속사는 14일 팬카페에 “사후 처리 미숙에 대해 송구스럽고 큰 책임을 통감한다”라면서도 “예정된 창원·김천 콘서트와 월드 유니언 오케스트라 슈퍼 클래식은 일정 변동 없이 진행하려고 한다”고 했다.

김 씨는 2019년 한 트로트 경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성악 창법으로 노래해 ‘트바로티’(트로트와 파바로티의 합성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인기를 얻었다. 김 씨는 2021년 인터넷 불법 사이트를 이용해 불법 도박을 한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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