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32일 오후 730분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무대에 박지선(성균관대학교 유가문화예술콘텐츠연구소 책임연구원)의 개인 춤판이 올랐다. <한국춤의 근원에서 찾는 격조와 정취>라는 다소 익숙하지 않은 공연 제목은 박지선의 남다른 개성이 엿보인다.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개인 춤판은 자신의 춤 여정에서 거둔 성과를 관객에게 보이는 한바탕의 춤 잔치이다. 박지선은 춤의 레퍼토리로 인식되던 공연에 레퍼토리의 성립과 관련된 역사적 관점을 드러내어 감상의 폭을 확대하였다. 춤의 근원을 살펴 양식 속의 격식과 운치를 짚어보길 바라는 박지선의 메시지로 이해된다.

그간 임학선댄스위의 안무가(按舞家)로 공연 활동을 해온 박지선의 해석 역량과 연기적 호기심을 통해 집약된 결과가 반영되어 신선하였다.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그녀만의 관점이 전통춤판 사이사이에 작품 해석을 덧입힌 흔적으로 드러난다. 연행 작품은 문묘일무(文廟佾舞)’, ‘부정놀이춤’, ‘즉흥무’, ‘교방굿거리춤’, ‘십이체장고춤’, ‘진도북춤의 전통춤 레퍼토리이다.

문묘일무는 박지선과 성균관대학교 후배 이정민(임학선댄스위 정단원), 조민아(국립전통예술대학교 강사), 성주현(선화예술고등학교 강사)과 함께 22행의 열을 지어 4명이 2(二佾)의 형식으로 춤추었고, 김숙자류 부정놀이는 정경화(성신여자대학교 강사)가 홑 춤으로 추었다. 이어서 박지선이 강선영류 즉흥무를 춤추고, 김수악류 교방굿거리를 유혜진(성균관대학교 유가문화예술콘텐츠연구소 책임연구원)과 이어서 릴레이 형식으로 춤추다가 후반에서 2인 소고춤으로 마무리하였다. 다음은 초청자 김승혜(동아방송예술대학 외래교수)가 한혜경류 십이체장고춤을 추었고, 박지선이 박병천류 진도북춤으로 대미를 장식하였다.

이번 무대는 2021<박지선의 춤, 역사를 품은 작은 몸짓>의 공연 이름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한국춤의 근원에서 찾는 격조와 정취>역사’, ‘근원이라는 회귀’, ‘되돌아봄을 통해 춤이 갖는 의미를 탐색하고 있다. 이는 문묘일무 연구자로서 학술적 관심을 보여 온 그녀의 성과를 공연에 반영하여 학술연행에 해당하는 아카데믹한 면모를 개성으로 보여준 것이다.

문묘일무는 고려 예종 11년인 1116년 송나라 대성아악(大晟雅樂)의 유입으로 연행하게 되었다. 주로 제향(祭享)에서 사용하며, 전후(前後), 좌우(左右)로 열([])을 지어 일무(一無)라 칭하고 성현이나 왕조에 헌무(獻舞) 한다. 일무는 대상자의 지위(地位)에 따라 팔일무(八佾舞육일무(六佾舞사일무(四佾舞이일무(二佾舞)로 인원을 구분하여 춤을 추는 다분히 등급적인 예()의 범주를 구성한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는 문묘일무의 문무(文舞)와 무무(武舞)를 연행 함에 있어 춤이 갖는 형식적 의례 특성보다는 춤의 생성에 관한 해설을 입장과 전환과 퇴장에 덧붙여 문묘일무가 갖는 상징과 의미를 부각하였다. 물과 새 등의 고요한 소리를 배경으로 예기(禮記)』 「악기편의 기록을 성음(聲音)으로 표현하여 예()와 악()의 상징인 문묘일무를 소개하였다. 의물(儀物)인 약···(···)을 들지 않고 문묘일무의 구조를 설명하거나 의미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문묘일무 박지선(사진제공 박지선)

의례춤의 특성상 통일적이고 지속적인 감상의 어려움에 해설을 더하고, 도입부에 춤의 시공간적 변화를 보여주어 본 춤에 해당하는 문화 생명의 근원인 공자님께 올리던 문무와 무무에 집중하게 하였다. 박지선은 몸이 덕()을 수양하는 부분으로 문묘일무를 춤추었듯이, 이번 공연이 자신의 예술적 정립을 위한 공연임을 말한 것이다.

문묘일무 이후의 무대는 라이브(live) 음악으로 공연되었다. 박지혁이 장단을 잡고 김유리(경서도소리), 김미성(남도소리), 최광일(피리), 박종현(대금), 김승철(아쟁), 김승태(해금·타악), 안태원(타악)이 연주를 맡았다. 민속춤 계열의 춤을 구성하여 삼현육각(三絃六角)의 반주에 흥을 넘나들며 춤추었다. 레퍼토리 구성은 일단의 성공이었다. 레퍼토리의 분위기나 춤의 유파(流派)도 다양하였고, 초청된 춤꾼들도 일정 수준의 자기 색을 명확히 보여주어 변화를 꾀해 흥미를 잃지 않게 하였다.

두 번째 작품 부정놀이춤은 경기도당굿에 뿌리를 둔 재인계(才人系)의 춤이다. 무계(巫戒) 출신 무용가 김숙자가 집대성하여 무대화한 춤이라 춤은 굿판의 생생한 흐름보다는 간결하며 미적인 특질을 기반으로 양식화되어 있다. 춤은 엇박자가 많고 가락의 변화가 많다. 정경화는 엇박자와 정박자를 잘 짚어내며 묵직하게 초반 공연의 흐름을 잘 만들어 주었다.

 

정경화의 부정놀이춤(사진제공 박지선)
정경화의 부정놀이춤(사진제공 박지선)

박지선의 강선영류 입()춤은 한성준강선영임현선의 계보로 춤추었다. 본디 입춤은 유파 구성의 근본을 이루는 춤이다. 박지선은 이 춤을 어머니인 임현선(() 대전대학교 교수)에게 사사하였다. 연기해석이 뛰어나고 유연한 임현선의 영향을 받아 박지선의 입춤에는 예맥이 살아있다. 그러나 임현선의 섬세함과는 달리 박지선의 진취적인 성정이 춤에 반영되어 대담한 선을 구성하여 형태미가 인상적으로 남았다.

 

박지선의 입춤(사진제공 박지선)
박지선의 입춤(사진제공 박지선)

박지선이 선배 유혜진과 전후반으로 나누어 춤을 이어간 교방굿거리춤은 경상남도 진주 지역의 예기(藝妓) 김수악에서 비롯된 춤이다. 김수악배주옥으로 이어지는 춤을 사사하여 2인이 각기 춤을 추고, 뒤에 소고놀이로 흥을 더하였다. 초반의 춤을 맡은 유혜진에서 박지선으로 이어지는 춤은 두 사람의 유사한 듯 다른 춤의 개성으로 감상하는 즐거움을 더하였다. 접춤의 이어지듯 꺾어진 손놀림으로 춤이 진행되다가 박지선으로 교체되며 조금 더 대담한 선으로 춤을 채워갔다. 자진모리장단에 연행된 소고 2인무는 전반부의 정적인 흐름을 깨고 확장된 공간성을 기반으로 역동적으로 춤을 채워갔다. 조금 아쉬운 점은 교방굿거리춤이 교방(敎坊), 혹은 기방(妓房)의 제약된 공간에서 생성된 춤의 특질을 이해했으면 하는 점이다. 특히 전반부의 춤 흐름이 무()에서 유()로 이행하는 기세가 보여야 함에도 춤의 자연스럽고 내밀한 표현을 놓치고 있다. 교방굿거리춤의 문화적 함의는 춤의 변화 안에 포함되어야 함을 상기해야 한다.

 

박지선, 유혜진의 교방굿거리(사진제공 박지선)
박지선, 유혜진의 교방굿거리(사진제공 박지선)

12체장고춤은 서도소리의 유려한 흐름에 12가지 형상의 변화를 보이는 여성 장구춤이다. 장구를 매고 춤을 추는 일명 설장구춤과는 차이를 보인다. 앉은춤장구 허리에 매기-12가지 자태의 춤설장구춤으로 변화를 보이는 이 춤은 한혜경류이다. 이 춤은 일제 강점기 서도소리를 연행하며 장구를 매고 춤추던 전통을 무대춤으로 구성하며 양식화되었다. 따라서 장구를 애정(愛情)하며 놀리고, 허리에 묶고 민요 장단 연주와 같이 채 놀음 중심으로 장구를 연주하며 교태적으로 춤추는 매력이 있다. 김승혜(전 서울시무용단 단원)는 청춘가 부분의 채 놀음을 묵직하게 이어가고, 후반 설장고춤에서는 시원한 외모에 걸맞은 능동적인 멋을 보이며 춤을 이어갔다. 김승혜는 십이체장고춤를 강유(剛柔)의 대대적인 흐름에서 양강(陽剛)적 기질로 개성을 보였다.

 

김승혜의 십이체장고춤(사진제공 박지선)
김승혜의 십이체장고춤(사진제공 박지선)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진도북춤은 박병천황희연박지선의 계보로 박지선 춤추었다. 진도북춤은 진도의 지역문화 특성이 녹여진 춤이다. 진도 소포 농악, 두레 농악, 신청 농악의 다양한 기반 아래 성장한 박병천이 세련되고 군더더기 없는 서울의 무대 춤을 접하며 집대성하였다. 따라서 진도지역의 진도북놀이와는 달리 섬세하면서도 투박하고, 투박하면서도 세련되어 무용가들이 애착하는 춤이 되었다.

박지선은 황희연의 우연성에 입각한 흥의 방출, 길게 늘이며 추는 에너지의 확장을 수용하면서도 능동적인 가락의 타주로 역동성을 더하였다. 박지선만의 개성으로 춤이 활기를 찾아가며 관객의 호응으로 공연은 대미를 잘 장식하였다.

 

박지선의 진도북춤(사진제공 박지선)
박지선의 진도북춤(사진제공 박지선)

박지선의 개인 춤판 <한국춤의 근원에서 찾는 격조와 정취>는 프로그램의 구성, 춤의 양식구성에서 성공적이었다. 박지선의 작품은 뛰어난 상상력과 진취적인 태도로 자신감이 드러난다. 전통무용의 느린 흐름을 사이사이 자신의 사회로 객석의 해석을 도우며 공연의 몰입을 도운 점도 인상에 남는다. 이번 공연은 긴 시간 자신의 춤 세계를 지켜갈 박지선이 한 단계 성숙을 위해 마련하였다. 그녀의 행보를 응원하며 삭힘의 미학에 관한 말을 당부하며 끝을 맺는다.

 

 

글·김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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